본문 바로가기
요즘것들/디지털 문맹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디지털 문맹 노인을 ’배려‘해달라? 역효과만 양산

by 요즘사과 2024. 10. 8.

 

최근 기사를 보면 매크로를 동원하여 티켓 예매 경쟁에 뛰어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https://v.daum.net/v/20241005120004808

 

“티켓 1장에 80만원?”…임영웅 콘서트 가기 힘든 이유 있었네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임영웅 콘서트의 티켓 구하기는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단 1분 안에 티켓 사이트에 접속해 좌석을 선택하고 구매까지 한꺼번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v.daum.net

 

 

 

매크로를 사용하여 티켓을 예약하고 이를 되파는 것은 범법 행위입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이 예매를 하기 위해 매크로를 사용한 경우는 불법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크로를 단순 이용했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다만 매크로를 통해 티켓을 구매한 뒤 웃돈을 붙여 되팔면 공연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공연법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돼있다.

 

 

 

 

어설픈 '노인 배려'는 역효과만 양산한다

 

 

그런데 예매 경쟁 자체가 치열한 상황에서 구태여 노인의 디지털 소외를 들먹이며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언뜻 듣기로는 '어르신들 기차표도 예매 못해서 어떡해' 하면서 '배려'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매크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성세대들은 디지털 사회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 티케팅에 성공한 젊은 사람들은 전부 버스나 기차를 앉아서 타고 노인들은 입석으로 밀리는 것이 사회 정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식한 주장입니다. 경쟁 자체가 매우 치열한 상태에서 '노인 배려'를 명분으로 내세워진 정책은 도리어 악용될 소지만 높아지고, 정작 당초 목적인 '노인 배려'는  아무것도 달성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을 이용할 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한 '배려'라고 흔히 생각하기로는 '노인 전용 할당'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매 경쟁 자체가 치열한 상태에서라면 노인 할당을 해봤자 실제로 노인들이 예약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매크로까지 동원될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노인 할당표는 결국 젊은 세대가 노인 명의를 빌려 차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암표 시장에서 되팔이로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노인이 집중적으로 표적이 되는 명의 도용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어르신들 어떡해', '단통법'의 선례를 잊었는가?

 

 

디지털을 제때 익히지 않은 노인을 위한 배려라는 것이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일명 '단통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단통법'의 당초 취지는 노인 등 정보통신에 대해 잘 모르는 계층이 보조금을 받지 못해 기기를 비싸게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소비자가 같은 가격으로 기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통신 비용을 낮추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판매 실적을 급하게 올리기 위해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매장인 '성지'만 기승을 부리는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단통법'으로 인해 오히려 디지털을 제때 익히지 않은 노인들은 더 교묘한 방식으로 구형 단말기를 불리한 요금제로 떠맡는 경우가 부지기수가 되었습니다. '단통법'으로 인해 꼼수만 넘쳐나고 이동통신 시장이 더 복잡해지니 결국 노인들은 불리한 요금제를 떠맡게되어 통신비용 인하 효과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단통법은 폐지되었습니다.

'단통법' 사례에서 보여졌듯이 디지털에 제때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노인을 위한 '배려'는 오히려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편법만 넘쳐나게 만들고, 더 교묘하게 속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보안 강화가 불편함을 초래하면 또 '노인 소외' 타령

매크로 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사람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예매 절차에 추가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구글에서 '횡단보도가 있는 사진을 모두 체크하라'는 식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일종의 '번거로운' 단계를 넣어 사람과 매크로를 구별하는 '거름망'을 만들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심지어 구글 뿐만이 아니라, 특히 중국의 각종 웹사이트들 중에서는 '사람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그야말로 여러가지 유형으로 수시로 나타나게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매크로가 워낙 기승을 부리니 '거름망'을 촘촘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이어서입니다.

 

하지만 보안을 위해 '번거로운' 장치를 넣을수록, '나 늙어서 몰라'라고 하면서 무작정 배려를 강요하는 노인들에게는 이 '번거로운' 장치는 '버럭'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즉, 그나마 디지털을 어느정도 익히고 따라갈수는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크로를 거르는 장치'를 만들었더니 또 '노인 소외'라는 말만 되풀이될 것입니다.

 

 

 


 

나이 핑계대고 디지털을 안 익히면 취급수수료를 부과해야

 

 

디지털을 정말 할 줄 몰라서 전화 예매를 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취급 수수료를 무겁게 부과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늦으면 대신에 취급 수수료를 비싸게 물리는 방식으로 가는 편입니다. 전화예약을 받아주는 대신에 추가 수수료를 부과한다면 전화 예약을 위한 할당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을 제때 익혀서 남의 손을 빌리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물을 생각은 안하고,  저렴한 감성팔이로 "젊은 사람들은 앉아서 가고 노인은 서서 가는 것이 사회 정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수료 부과조차도 '노인 소외'라고 할 것이 뻔합니다

실제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특히 기차표 등에서 종이 티켓을 발급받거나 우편으로 고지서를 받으면 수수료를 물리는 곳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아무도 노인 차별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배려'가 아닌 '책임 부과'가 우선이 되어야

디지털 사회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정작 젊은 세대가 도움을 제공할 때 그에 대한 비용이나 책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나 늙어서 몰라'라며 나이를 핑계로 막무가내로 '배려'를 내세워 젊은 사람들의 손을 공짜로 빌리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도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정의를 논하려면, 그에 맞는 책임도 함께 요구되어야 합니다. 나이를 핑계로 내세워 새로운 것을 익히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남의 손을 빌릴 것이면, 그에 대한 대가도 지불하도록 해야합니다.

 

결국, 디지털을 제때 따라갈 궁리는 안하고 아무데서나 나이를 핑계로 '디지털 소외'를 주장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남의 손을 공짜로 빌리려는 착취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무작정 '배려'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을 제때 안 익히면 책임을 따져묻는 차원으로서의 비용 부과도 필요합니다.